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일전쟁/오해와 편견 (문단 편집) === [[조지프 스틸웰|스틸웰]]은 유능한데 중국군이 무능해서 패한 것이다? === 한국에서 스틸웰은 명장이고 무능한 중국군이 스틸웰의 지휘를 따르지 못해 진 것이며 장제스는 오만하여 미국인 고문들의 현명한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주장이 꽤 퍼져 있지만 이 또한 스틸웰의 일방적 주장을 답습한 오류이다. 스틸웰은 혐중론자였고 중국 파견 소식에 "[[쿨리]]들과 어울리라니 날 뭐라고 생각하는가?"라고 짜증냈던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스틸웰은 중국에서 무관으로 복무한 경험과 출중한 중국어 실력 덕분에 중국통으로 알려져 장제스의 고문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全) 중국군의 지휘권을 주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또한 장제스는 소련에서 보내준 바실리 블류헤르나 독일이 보내준 한스 폰 젝트, 알렉산더 폰 팔켄하우젠같은 고문을 원했지 자기 자신이 직접 지휘하려드는 장군을 원한 게 아니었다. 이러니 둘의 사이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스틸웰은 중국군이 일본군과의 오랜 전투를 통해 터득한 지구전과 소모전에 대해선 중국인들은 용병술도 모른다고 비웃다가 정작 자신이 장제스의 최정예 병력을 데리고 버마에서 일본군과 맞섰을 때는 장제스의 충고도 무시한 졸렬한 지휘 때문에 개박살났다. 이미 영국군은 버마 수비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다 빠지고 있었고 철수하는 인도군과 영국군, 민간인을 보호한 건 스틸웰이 그렇게 폄하하던 중국군이었다. 그래놓고 '이게 다 무능한 중국군 탓이다!'를 시전하면서 중국군들을 모두 총살해 마땅하다는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정작 중국군과 같이 싸운 영국군의 슬림 중장은 중국군이 노련한 베테랑으로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극찬했다. 자신의 최정예 부대를 말아먹은 스틸웰에 대해서 장제스는 엄청난 증오심을 품게 되었고 플라잉 타이거스의 셰놀트 준장 역시 스틸웰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지휘관이며 만약 그가 미군이 아니라 중국군 소속이었다면 진작에 총살시켰을 것이라며 뼈저리게 혐오했다. 그리고 ~~주는 것은 없이~~ 요구는 많아서 버마 전투에서 중국군 3개군을 뺐고 다시 30만 대군을 버마 탈환을 위해 뺐고도 중국이 무능하다는 말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스틸웰은 300개 사단, 400만에 달하는 중국군을 90개 사단으로 감축하고 소수 정예로 개편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러기 위한 물자는 하나도 제공할 생각이 없었다. 장제스가 이 상황에서 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미국은 장제스의 지상군 파병 요청도 지원 확대 요청도 다 씹었다. 미국은 태평양과는 달리 중국에선 그저 일본군을 묶어두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았고 그 때문에 아예 일본군을 축출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바랬던 장제스는 속이 터졌다. 장제스는 미국이 주는 것도 없이 내정간섭에 월권을 하려 든다고 이를 갈았다. 특히 장제스는 여러 번 반란을 경험한 사람이었고 스틸웰이 자신의 군의 지휘권을 가지고 군대를 축소하려 드는 것을 아예 미국인들의 반란 음모 정도로 받아들였다. 허나 스틸웰은 이런 중국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고 "중국인들이 하는 것도 없이 요구만 많다"고 깠으며, 국부군이 중일전쟁 개전 초기 수십 만명의 피를 뿌려가며 처절히 맞선 사실도 다 국민당의 거짓말 정도로 치부했다. 스틸웰은 [[바이충시]]를 비롯한 일부를 빼곤 장제스 이하 대부분의 중국 장군들을 무능하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중일전쟁 당시 장제스는 상하이 전투에서 삽질을 벌이기는 했어도 그 이후엔 상하이 전투의 교훈을 바탕으로 화북 등지에서 향상된 철수와 유격전, 소모전을 병행했고 일본이 우한을 점령한 이후 공세종말점에 다다르자 난닝, [[난창]], 우한 등지에서 여러차례 반격을 감행해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했다. 특히 [[진주만]] 직후의 3차 [[창사]] 방어전에서는 영국까지도 진주만 이후 연합국이 드디어 승리를 거뒀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스틸웰은 장제스의 지구전이나 지형을 이용한 방어전 유도 전략을 비웃으며 화력을 모아 정면승부를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까는 행보를 보였고 나중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이게 다 중국군 때문이다]]" 시전으로 일관했다. 스틸웰이 무능하다고 까댄 두위밍 장군만 해도 일본군 상대로 여러번 분전하여 승리를 거두었지만 스틸웰은 그를 매우 폄하하여 한국에도 그가 무능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버마 전투도 무능한 중국군 때문에 스틸웰이 졌다고 스틸웰의 일방적 주장만 알려져 있는데 실상을 까보면 다르다. 이미 버마 포기를 결정한 영국군이 지독할 정도로 비협조적으로 굴며 중국군 뒤통수를 치고 달아나 버렸으며, 스틸웰 본인이 "일본군은 전차도 대포도 없다"고 무작정 깔보고 무장도 제대로 안된 중국군을 무리하게 내세우는 졸렬한 지휘를 한 탓이었다. 정작 [[쑨리런]] 장군이 지휘하던 중국군은 영국군 7,000명과 500명의 민간인, 17 인도사단을 구출하는 성공적인 전과를 올렸고 스틸웰 본인도 쑨리런을 동양의 [[에르빈 롬멜]]이라고 칭찬했다. 그러곤 동양의 [[스탈린그라드]]라 불리는 창더 전투 직전엔 무리한 버마 탈환을 위해 장제스의 최정예 병력 30만 명을 빼돌려놓곤 병력 파견 조건으로 약속했던 물자도 주지 않았다. 그래놓고 창더 전투에서 중국군이 고전하자 중국군은 무능하다고 비웃었다. 자기가 원인을 제공한 건 둘째치고, 상덕에서 중국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긴 했지만 치열한 저항과 축차적인 소모전으로 일본군에 적잖은 타격을 줬음에도 말이다. (일본군 11군 사령관 요코야마 중장은 이 타격에 작전을 조기 종결하고 퇴각했다.) [[이치고 작전]], 즉 [[대륙타통작전]]이 벌어질 무렵에도 멍청한 짓은 이어졌다. 장제스가 조만간 "일본의 침략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하자 스틸웰은 "형편없는 일본군 따위가 무슨 공세를 취하겠냐"고 그의 말을 싹 다 무시하고 장제스의 유일한 전략예비대인 Y군을 장제스를 협박하여 빼앗아 버마로 보냈다. 본국 정부에도 장제스가 공산당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내놓지 않는다고 모함했는데, 말 그대로 루스벨트와 장제스를 최대한 이간질한 셈이다. 루스벨트는 스틸웰의 말을 듣고 당연히 장제스에게 "X군을 내놓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고 위협했고 장제스는 피토하는 심정으로 최정예 예비대를 내놓아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치고 작전이 터져서 일본군 50만명이 뤄양, 난닝, 창사, 헝양을 잇달아 점령했다. 중국군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 미친듯이 싸워 일본군에게 무려 10만명의 피해를 안겨줘서 일본군이 우리가 상대하는 것이 중국군이 아니라 미군인가 하고 당황할 정도였지만 결국 중국군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어 화중을 모두 잃고 중요한 곡창지대들을 상실했다. 스틸웰은 이런 상황에서도 장제스의 지원 요청을 모두 무시하고 오히려 자신이 중국군을 지휘해야 한다고 떠들었으며 일기에는 건방진 장제스는 골탕을 좀 먹어야 한다고 고소해하는 행태를 보였다. 일찍이 그는 장제스 암살을 기도한 바도 있었다. 결국 장제스는 폭발하여 루스벨트에게 스틸웰을 자를 것을 요구했다. 얼마나 장제스가 초강수를 뒀는지 "스틸웰을 자르지 않을 거면 걍 관계 끊자. 너네가 준 물자 다 가져가라!"라고 루스벨트에게 직통으로 통첩을 날렸을 정도였다. 이 초강수에 루스벨트가 굴복하여 결국 스틸웰은 1944년 10월 19일 [[앨버트 웨드마이어]]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중국에 부임한 웨드마이어가 한 첫번째 일이 허물어지는 중국군 방어선을 보강하기위해 스틸웰이 살윈강에 묶어둔 중국군 2개 사단을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낸 일이었다. 스틸웰은 자신의 동맹인 중국을 깔보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군도 깔봤는데 상기했듯이 창더 전투, 이치고 작전에서 일본군 따위가 무슨 반격을 하냐고 계속 방심하다가 중국군만 엿먹였으며 1942년 버마 방어전을 맡았을 때도 일본군을 얕보다가 대패하여 100명의 일행과 함께 걸어서 버마를 탈출했다. 그리고 1944년의 버마 탈환전 때도 장제스가 버마의 일본군이 아직 녹록치 않다고 경고해줬음에도 장제스의 모든 조언을 간섭이자 멍청한 소리로 비난하며 씹고 X군을 이끌고 공격을 감행하다 자신이 주장한 것보다 세배나 되는 일본군과 맞닥뜨려 또 고생했다. 스틸웰은 버마 전체에 일본군 5개 사단 밖에 없으며 자신이 공격하는 버마 북부엔 1개 사단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버마 전역에만 8개 사단이 있었고 스틸웰이 버마 북부에서 맞닥뜨린 15군은 3개 사단 병력이었다. 거기에 2개 사단이 더 오는 중이었다. 그의 버마 탈환 계획에서도 영국, 미국, 중국이 모두 불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인 명예를 위해 악을 써서 관철시킨 것이고 영국과 미국이 반대하자 스틸웰은 미국, 영국의 협조 없이 중국군만 보낼 수 없다고 반대한 장제스를 비난했고 보다 못한 셰놀트가 스틸웰이 설욕에 눈이 멀어 사리분별을 못 한다고 비난할 정도였다. 결국 그의 버마 탈환전은 무능한 [[하나야 타다시]], [[가와베 마사카즈]]등의 자폭으로 어느 정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는데 [[무타구치 렌야]]의 전설적인 [[임팔 작전]]과 맞물렸고 결국 버마 탈환에 관심이 없던 영국까지 가세하여 랑군까지 밀어버렸다. 원래는 그가 아닌, 대군을 운용해본 휴 드럼이 스틸웰의 자리에 내정되어 있었으나 그는 미국이 중국에 지원을 해줄 생각이 없음을 알고 중국에 대대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조건을 붙여서 짤렸다. 그 대신 중국어 실력 때문에 스틸웰이 임명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 그저 중국어 실력 때문에 임명되었던 것은 둘째치고 인종차별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으며[* 쑹쯔원은 스틸웰이 주중 미국대사관 무관을 지냈다는 말에 혼란기 중국을 경험한 그가 혐중 성향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는데 이는 적중했다.] 거기에 정치적 능력은 매우 떨어졌다. 일례로 그는 중국에 부임한 이후 다짜고짜 장제스 휘하 직계군의 지휘권을 요구했다. 스스로도 말이 안된다고 판단하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중국군의 고위 미국인 장교의 그의 업무는 분명히 충칭과 워싱턴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고 장제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지만 그는 개인적인 편견으로 중일관계를 멋대로 재단했으며 정말로 필요한 지원들은 자기 생각에 필요없단 이유로 끊어버리고[* 대표적인 것이 장제스가 미국에 요구했던 항공기 지원인데 장제스가 500대의 항공기를 요구하자 스틸웰은 그걸 씹어버렸고 장제스 부부가 강력히 반발하자 루스벨트는 265대의 항공기를 보내주었다.] 장제스의 비현실적인 요구는 장제스를 망신주기 위해서 가감없이 워싱턴에 전달하면서 중국인들은 너무 멍청하여 우리가 이걸 다 들어주리라고 생각한다는 개인적 소견을 첨부하기도 했다. 장제스의 북벌 시기에 중국에 왔던 소련 고문들이나 중일전쟁 개전 전후의 나치 고문들의 세련된 행보에 비하면 그의 행동은 그가 과연 동맹국 무관인지도 의심스럽다고 할 만 하다. 다른 미국인 참모인 클레어 셰놀트의 행보와 비교해도 스틸웰의 정치적 막장성은 두드러진다. 버마 전선 이후에 장제스와 투닥대다가 미 정부에 칭얼대자, 미 정부에서 스틸웰에게만 비밀 전문으로 '당신이 중국군 통수권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오'라는 내용을 전달했는데 경솔하게도 스틸웰은 그걸 갖다가 장제스 방으로 쳐들어가서 장제스 얼굴에 들이미는 짓을 했다. 이러한 행각과 대륙타통작전에서의 자폭이 겹치면서 결국 장제스의 중국과 스틸웰 둘 중 하나를 택일하라는 강력한 반발로 미 정부는 중국이 등돌릴까봐 스틸웰을 본국으로 소환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스틸웰은 마지막까지 사고를 치니 자신이 잘렸다는 사실에 빡친 나머지 후임인 웨드마이어 장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인수인계도 하지 않고 인도로 떠나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웨드마이어는 스틸웰의 이러한 행태를 회고록에서 비판했다. 장제스와 중국인들만 스틸웰을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공명심에 눈이 어두운 스틸웰은 버마 탈환전 중에서는 영국군의 전과들을 자신의 전과인 것처럼 발표하고 봤다가 [[루이 마운트배튼]] 제독[*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자이며 외조카가 [[필립 마운트배튼]]이다. 1943년부터 동남아시아 전선 연합군 최고사령관을 맡고 있었기에 인도-버마 전선의 모든 연합군 작전과 태평양 지역에서 영연방군이 벌인 모든 전투에는 이 사람의 기획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1943년 이전에는 지중해 전선과 노르웨이 침공 작전에 참가하는 등, 혈통에 걸맞지 않게 최전선에서 자주 뛴 편.]의 격노를 사기도 했으며 버마 탈환 준비 과정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해서 런던과 워싱턴의 나쁜 시선을 동시에 받았다. 게다가 같은 미국인 셰놀트는 스틸웰에 대해 아예 이를 갈았고 스틸웰 휘하에 배속된 윙게이트 병단을 본따 창설된 메릴 부대도 스틸웰의 지휘권 행사에 대해서 크게 반발하곤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